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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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우리는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관계들로부터 촉발되는 불편한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회화의 물성 실험과 액션페인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붓이 아닌 작가 자신의 신체를 활용하는 것은, 감정의 표현에 있어 작가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다. 작가는 손이나 머리카락으로 형상을 그려내거나 색을 칠한 표면을 손톱으로 긁어 스크래치를 낸다. 때로는 물감을 칠한 캔버스 위에 올라가 뒹굴며 궤적을 남기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화면들을 바느질로 엮는 작업을 더하고 있는데, 앞과 뒤를 모호하게 하여 의도적으로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소강 상태로 직접 이끌지만, 흔적들에 아로새겨진 감정은 형상을 얻어 지속되며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층위의 기억으로 제시된다.

- 큐레이팅 글

우리가 지닌 불안과 모호함은 본디 인간이 지닌 복잡한 감각 작용의 흔적이다. 특히나 개별자들이 맺는 관계는 한없이 불안정하기에 여러 번 어긋나고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필연적인 만남들은 아무리 모호한 것일지언정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불분명한 존재들은 인간의 물질적 생존에 결코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이나, 생명이 생명으로서 남아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정의내릴 수 없는 관계와 감정의 편린이라도 붙잡고자 애쓰며 살아간다. 불분명한 형체의 무언가를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인간 생명의 흔적은 그 신체를 벗어나 불분명한 형상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고우리는 이 비물질적인 형상들 중에서도, 인간 사이에 피어나는 감정과 관계를 포착하여 회화의 물성을 통해 담아내고자 했다. <Exterior 2 16>, <Exterior 2 18>은 손끝과 손톱을 이용하여 작품 표면의 형태를 구성한 작업이다. 두 작품에서 손끝에 맴도는 인간 고유의 박동과 움직임은 선율과 파동이 되어 회화 표면에 머무른다. 또한 손날로 기존의 형태를 닦아내고 다시 그림을 채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무(無)와 유(有)를 계속해서 넘나든다. 이러한 고우리의 작업 방식은 존재와 비존재, 본질과 비본질의 경계를 흐트러뜨림으로써 무엇이 본질인지 결코 알 수 없는 흔적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작업 기조는 <Flexible Mark (Crack) 02>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고우리는 물을 먹인 캔버스를 구겨 캔버스 겉과 안 사이의 ‘틈(Crack)’을 발견하려 시도한다. 겉도 안도 아닌 불분명한 경계 사이의 틈,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이 작은 공간이야말로 생명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경계의 틈을 찾아내는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소강시키고, 감정은 점차 흐려질지언정 그 과정에서 표상된 흔적들은 고우리의 회화 평면에 고스란히 남는다.

신체 일부를 사용하는 고우리의 작업 방식은 <Flexible Mark (weight 01)>에서도 이어진다. 고우리는 캔버스 천에 유화 물감을 바른 뒤, 그 위에서 직접 뒹굴어 자신의 움직임을 그림에 담아낸다. 신체 일부뿐만이 아닌, 온몸까지도 사용하여 만들어진 추상이 캔버스 위에 남아 물감을 바르는 것 이상의 격렬한 흔적이 드러난다. 발자국을 비롯한 작가의 신체적 흔적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작가가 온몸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표상한다. 작가 본인이 느낀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동안 수많은 신체적 행위가 작품의 표면 위에 계속해서 쌓여간다. 그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작가 자신이 쌓아온 과거의 시간을 마주한 결과물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축적된 시간은 그렇게 비로소 가시화되어 회화의 표면을 붙잡은 채 머무르게 된다.

고우리의 작업에는 과거의 흘러가는 감정들을 붙잡아 오랜 신체적 행위의 반복을 통해 켜켜이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그렇게 쌓인 지난한 시간의 층위는 붓이 아닌 신체가 직접 가닿은 형태로, 신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리듬감으로 드러난다. 그런 방식으로 고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결국 작가 본인의 개별적 경험 그 이상으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간 감정의, 나아가서는 생명이라는 어떤 존재의 증명 이다. 모호함과 불안정성 속에서 그 감각을 인정하고 들여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란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는 점에서, 인간의 껍데기에 갇힌 편린을 포착하는 고우리의 회화는 이러한 마주함을 이어주는 회화이다.
박민지

영점에서 시작한 호흡은 다른 세계를 부른다. 이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위험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운동하는 생명들의 접점을 말하는 데에 이상을 논할 수 있을까. 자극을 회피하고 차단하는 것은 답일 수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관계에서 불시에 찾아오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과 그 모순 같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실체 없이도 강력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다스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이에 고우리는, 회화 재료들의 물성을 파헤치고 실험해 보기를 택한다. <Exterior 2> 연작 중 18번에서는 프라이머를 바른 천을, 16번에서는 앞뒷면이 다른 천을 구겨서 물에 담금질한 뒤 표면을 탈락시키는 일련의 행위가 반복된다. 이로써 만들어진 불규칙한 표시는,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가 패턴이 되어 긴 시간 속 반복으로 이뤄낸 심연으로의 도착을 선언한다. 여기에는 드로잉이 후행 되기도 하는데, 가장 깊은 곳에 닿기 위한 어떤 여유가 요구되고 또 느껴지는 앞선 작업과는 달리 보다 즉각적이고 발산적으로 나타난다. 이 감정이 만든 순간의 길은 다시금 닦아내어도 화면에 재료가 고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남은 것들은 영원한 해결과 그로 인한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을 은유한다. 화면을, 또 내면을 쓸어내듯 가시화한 비가시성은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휘발되며, 아주 서서히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더욱 유연한 존재가 되기 위한 시도로 <Flexible Mark>연작을 이어간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무채색과 대비되는 색채의 사용은, 다른 도구가 아닌 작가 자신의 신체 움직임과 결합하여 서정성을 더욱 고조시킨다. 서로 다른 감정을 자아내는 색이 올라간 표면을 손으로 쓸고, 손날로 닦고, 손톱으로 긁는 등 점점 기민해지는 과정과 때로 직접 천 위에 직접 올라 뒹굴기도 하며 남기는 궤적은 내밀한 감정의 주체로서, 이를 어떤 매개도 빌리지 않고 직접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Flexible Mark 01 (weigh)>의 좌측 하단에 남은 서명 같은 발자국은 행위자로서 작가의 존재를 각인한다. 요동치듯 고요하게 숨이 남아있는 화면은 행위가 더해지고 오히려 물감이 덜어지며 가능해진다. 고우리가 직접 자신의 감정을 소강상태로 이끌면서, 물감은 각기 다른 정도로 걷어져 레이어를 만든다. 이는 작가가 열어낸 기억과 감정의 창이 되며, 감상자는 그곳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은 감정을 가지고, 감정은 생을 가진다. 고우리의 작품에서는 이 둘이 서로를 지목하고 붙들며, 소강되지만 소멸되지 않은 채 긴장과 조화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감정과 그 흐름은 무언가를 지시하려 하지 않으며, 응축된 그 자체가 작가 자신에게 의미가 되어 화면에 자리한다. 이러한 흔적은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한 증언 혹은 재구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아로새겨진 감정이 형상을 얻어 지속되어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층위의 기억으로 제시된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우연의 집합 속에서 작가와 감상자가 함께 마주하는 것은 끝이 없는 끝, 다름 아닌 미결이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성이라기보다는, 의미가 의미로 계속하여 이어지고 호흡하는 창조적 장에 가깝다. 모든 새로운 파편은 허용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감각의 진동 속에서 작가의 시간은 비로소 존재하고 있다. 고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둔 자리에서 어느 시간에 충분히 발산된 에너지가 사그라든 뒤, 여러 표시와 얼룩들이 자유롭게 잔존하게 두면서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기다린다.
강혜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현대미술학회 C.A.S.언피지컬 리듬